병원 The Hospital
2022-2024



1945년 2월 16일, 스물일곱의 청년 윤동주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진 바 없으나, 같이 수감된 사촌 송몽규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군 생체 실험의 결과로 추정된다. 그리고 3년 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며, 그는 사랑했던 조국에서 국민 시인이 된다.

   2018년 겨울, 유년 시절부터 윤동주를 흠모했던 나는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에 갔다. 윤동주의 시비가 왜 일본에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시비를 향해 걸어가던 중, 어느 일본인과 대화하게 되었다. 그 일본인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를 기리며 일본의 과거를 반성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윤동주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한국과 일본의 관계, 평화, 더 나은 미래 등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복합적인 문제로 얽혀 있다.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한국의 저항 시인 윤동주(尹東柱)가 아닌, 일본의 청년 윤동주(平沼東柱)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윤동주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사실을 평생 부끄러워하며 슬퍼했지만, 결국 한국의 민족시인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방황했던 윤동주를 통하면, 다양한 의미가 생성될 가능성을 느꼈다. 예상치도 못한 생각들이 자유롭게 모이면, 무언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자료를 찾다가 일본에 윤동주를 기념하는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활동에 참여했다. 그중 어느 회원이 나에게 원래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지으려 했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시를 통해 사람들이 내면의 치유를 경험하며,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세상을 바라보며 글로써 병원을 지었다. 나는 사진가로서 그의 시선을 이미지로 남기며 또 다른 병원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윤동주의 모교인 릿쿄 대학과 도시샤 대학, 그의 자취방 주변, 생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놀러 갔던 우지 시, 삶의 마지막 장소인 후쿠오카 형무소 등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윤동주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기록했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윤동주의 시 <병원>의 구절처럼, 이 작업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우울해하고 끝까지 침잠하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보는” 것이다. 세상 그 무엇도 사람들의 믿음만큼 명료하고 단순하지 않다. 분명 우리가 하는 고민들 사이에 중요한 것은 흩어져 있을 것이다.

   차연의 풍경 속에서, 윤동주와 만날 수 있길 바란다.
On February 16, 1945, 27-year-old Yun Dong-ju died in Fukuoka prison in Japan, just six months before liberation. The exact cause of his death is unknown, but according to the testimony of his cousin Song Mong-gyu, who was also imprisoned with Yun, his death is believed to have resulted from medical experimentation and biotest by the Japanese military. Three years later, his first and last poetry collection The Sky, the Wind, the Stars, and the Poem was published and he became a national poet in his beloved country.

   I, who had admired Yun Dong-ju since childhood, heard that there was a memorial stone to Yun Dong-ju at Doshisha University, and went to Japan In the winter of 2018. I talked with a Japanese person while walking toward his memorial stone of poetry, raising my doubts, “Why is Yun’s memorial stone in Japan?” That Japanese person discovered the value of peace through Yun’s poetry and life, and reflected on the past of Japan, paying homage to the poet. I was ashamed not to know Yun Dong-ju properly despite my liking the poet. From that day on, I started wondering if there was anything I could do.

   It was not easy to discus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peace, and a better future. These issues are intricately intertwined with one another, making it difficult to simplify. I was also afraid to say what I thought. Meanwhile, I considered investigating Yun Dong-ju as a young Japanese man, not as a Korean resistance poet. Yun went to Japan to attend college after giving up his Korean name and adopting a Japanese name. He was ashamed and saddened by that fact for the rest of his life, but was eventually appreciated as Korea’s national poet. Yun Dong-ju’s life, straddling both Korean and Japanese cultures, gave rise to a multitude of interpretations. When diverse thoughts come together without constraint, it seems that something new and unexpected begins to emerge.

   While doing some research, I discovered an organization in Japan called The Rikkyo Association, which is dedicated to poet Yun Dong-ju. I decided to join and became involved in their activities. During my participation, a member shared an interesting fact with me about Yun Dong-ju. I learned that he originally wanted to title his poetry collection “Hospital” because he hoped that his poems would help people find  inner healing and contribute to a more peaceful world. Essentially, Yun viewed his writings as a form of building a metaphorical hospital for the world. Inspired by this idea, I made a personal commitment to build a similar “Hospital,” but through my photography. I traveled to various locations including Yun’s alma mater, Rikkyo University and Doshisha University, his rented abode in Uji, the city he and his friends last visited before his passing, and Fukuoka prison, where he spent his last days. My goal was to capture the scenes that Yun likely saw, and create a visual representation of the places significant to him.

   “Yet my old doctor does not know what ails this young man.” Similar to the line from Yun’s poem Hospital, this work does not have a definitive answer. Perhaps, All I can do is to be depressed enough and calm down to the end, and lie down where he lay. Nothing in the world is as clear and simple as people’s beliefs. However, it’s obvious that important things are scattered among our concerns. I hope we can encounter Yun Dong-ju in these différance.


비평글: 홍진훤 작가 / 영화감독
시는 힘이 없다. 시를 닮은 사진도 그렇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걸려있던 거울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윤동주의 <서시>가 적힌 그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덧없음이 시작되었다면 20대의 작가가 왜 하필 <병원>을 읊조리기 시작했는지도 이해해 볼 만하다. 그렇다면 이토록 텅 빈 풍경도 자연스럽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이 구절이 먼저였을지 작가의 순례가 먼저였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사진 앞에서 부정할 수 없는 동기로 다가온다.
    누구나 우주만큼의 고통이 있다. 하지만 윤동주가 고백하듯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무채색이라 해도 될만한 작가의 사진들은 선택한 적 없는 환경에 놓여버린 자신의 무력과 소심함을 고백한다. 거리로 나서지 못하고 틀어박혀 시를 쓰는 윤동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위로하고 질책한다. 스무 살은 지나치게 억울하다.
   시는 힘이 없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유용하다. 언제나 스스로 힘없음을 고백하는 것은 절박한 용기다. 시는 스스로 서정과 저항을 구분하지 않는다. 시를 닮은 사진도 그렇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병원>의 마지막 문장처럼 타인의 고통에 나의 몸을 포개는 행위는 서정이자 저항으로 서로를 비춘다. 작가의 사진은 이 거울을 다시 비추는 거울이고자 하는 듯하다. 드디어 하나가 여럿이 된다.